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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 아스라한 추억의 철길을 걷다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협궤열차

 

 

수원과 인천을 잇는 수인선의 협궤열차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협궤열차’라는 말은 일반적인 철도 레일 사이의 간격(궤간)보다 훨씬 좁은 선로를 달리는 열차를 말한다. 우리나라 표준 궤간이 1,435mm인데 반해 수인선 협궤열차는 그것의 절반 가량인 762mm의 선로를 달렸다.
협궤열차는 1937년 일제가 소금을 수탈할 목적으로 건설해 민족의 애환을 싣고 수원과 인천을 오갔다. 아픈 역사와 어울리지 않게 ‘꼬마열차’라는 귀여운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1m도 채 안 되는 길이, 좁은 폭 때문이었다.
70~90년대 인천과 수원을 하나로 통합하는 유일무이한 교통수단이었던 협궤열차. 광복 후에는 채소를 팔기 위해 도시로 나가는 부녀자, 통근하는 직장인과 통학하는 학생, 관광객, 인근 어민들의 발이 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협궤열차가 달리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도로교통과 버스의 발달, 이용객 감소 등의 이유로 1995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탓이다. 작은 몸뚱이지만 누구보다 힘차게 달렸을 꼬마열차. 협궤열차의 흔적을 찾아 함께 걸어 가보자.

 

수인선의 흔적을 따라, 고잔역 협궤철도

 

 

협궤열차는 사라졌지만 서민의 애달픈 삶을 간직한 수인선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수도권 전철 4호선 고잔역과 중앙역 사이 협궤철도다.

 

 

 

고잔역 2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보이는 작은 철길. 외로이 뻗어있는 이 철도는 얼핏 보면 꽤 멀끔하다. 금방이라도 저 멀리서 경적 소리를 울리며 열차가 달려올 것만 같다. 열차 없이 홀로 남은 철길이지만, 푸른 풀과 들꽃이 철길을 감싸고 있어 그리 외롭지만은 않아 보인다.

 

 

 

 

꽃내음을 맡으며 가만히 걷다 보면 중간중간 휜 선로, 녹이 슬어 닳은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된다. 걸을수록 세월의 흔적은 짙어진다. 그렇게 걷다가 수풀이 우거진 철도의 한가운데에 이르러 걸음을 멈춰본다. ‘쿠, 쿠, 쿠궁-‘ 작은 선로의 바로 북쪽으로 지나가는 4호선의 열차 소리. 문득 궁금해진다. 협궤열차가 달리는 소리는 어땠을까? 시끄러웠을까? 잔잔한 강물처럼 고요했을까?

 

 

 
고잔역 협궤철도는 관리가 안 되어 풀이 무성한 곳이 많다. 하지만 오히려 철도 마니아들에 따르면 이것이 이 길의 가장 큰 매력이란다. 협궤열차가 달렸던 당시에도 철길 관리 상황은 지금과 비슷했다. 때문에 열차가 전복되는 사고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었다고. 인적이 드문 철길을 걸으니 그 시절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해 묘한 기분이다.

 

 

 

기억 속으로 사라진 수인선이 부활한 것은 17년 후인 2012년 6월이다. 오이도에서 송도까지 가는 수인선 1단계 구간 개통을 시작으로 2016년 2월에는 송도와 인천을 잇는 2단계 구간도 연장 개통되었다. 그동안 버스를 타고 빙 둘러가야 했던 길을 수인선으로 인해 쉽고 빠르게 갈 수 있게 되었다. 2017년에는 수원-한대앞 구간이 개통될 예정으로, 과거 많은 시민에게 사랑받았던 옛 수인선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 그 바다 내음 그대로, 소래포구

 

 

 

소래포구는 수인선 건설 후 포구로 성장하기 시작해 1980년대 인천항의 소형어선 출입금지 조치 후 더욱 활성화되었다. 수인선이 운행되던 시기에는 협궤열차를 타고 농수산물을 파는 반짝 시장이 유행했는데 소래의 아낙들이 갓 잡은 싱싱한 수산물과 젓갈, 인근 농촌에서 가꾼 채소들을 열차에 싣고 올라 송도역 앞에서 장을 벌였다고 한다. 각양각색의 젓갈을 인 아낙들이 열차에 오르면 객차 안은 순식간에 갯내음으로 가득 찼다.

 

2016년의 요즈음, 송도의 반짝 시장은 사라졌지만, 소래포구의 갯내는 전과 같다. 여전히 주말이면 수인선 전철 안에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긴다. 역을 나와 어시장 방향으로 약 5분가량 걸으면 이내 정겨운 포구의 전경이 펼쳐진다. 바다의 수평선과는 또 다른 포구 특유의 활기, 이곳의 정취 하나하나가 모두 기분 좋은 설렘이다.

 

 

현재 소래포구 앞에 놓인 폭 좁은 소래철교(길이 126.5m)는 추억을 찾는 이들의 단골 산책로가 되었다. 두 사람이 겨우 비켜갈 만큼 폭이 좁은 다리지만, 밀물 때를 맞춰 방문하면 통통배들이 앞다퉈 들어오는 장관을 바다 한가운데서 볼 수 있다.
이제는 기적 소리가 사라진 수인선의 빈 철길을 걸어본다. 소래포구에 정박 중인 배들이 보인다. 끼룩대는 갈매기들 아래로 바다가 햇살에 닿아 반짝인다. 논밭이 있던 자리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 많은 것이 변한 듯한 풍경이지만 바다 내음, 햇살만큼은 그대로다.

좁은 선로를 뒤뚱거리며 쉼 없이 달렸던 꼬마열차, ‘협궤열차’는 이제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도심 속 곳곳에 숨어있는 철길의 흔적은 여전히 그때 그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 이번 주말에는 사랑하는 이의 손 꼭 잡고 수인선 협궤철도를 걸어보는 것이 어떨까? 꼭 수인선과 얽힌 추억이 아니더라도 학창시절 기차 타고 떠난 MT, 나 홀로 자유를 만끽했던 기차 여행, 소중했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가 새삼 떠오를지도 모른다.
흑백의 풍경이 어울리는 수인선의 철길, 그 아스라한 추억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 참고 문헌: 최진혁(2014). 수인선 협궤철도의 경관기억과 문화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